[장켈레비치] 죽음에 대하여
철학자 장켈레비치가 죽음에 대해 논의한 책이다.
책은.. 아주 짧다.
장켈레비치의 다른 철학서를 읽기 전 맛보기용으로 읽기 좋은 것 같다.
장켈레비치가 꽤나 최근의 철학자임에도
그의 저서들은 대부분 번역이 안 되어 있는 점은 안타까우나..
책에서 간단히 요약하는 생에는
세계 1, 2차대전의 시기를 모두 겪은 사람이다.
1903년에 프랑스에 태어났으나 부모 중에 유태인이 있었다.
그리고 세계 2차대전 땐 그 유명한 나치의 홀로코스트가 있던 때였다.
장켈레비치가 살던 남부프랑스도 나치에 의해 점령당했고,
그 과정에서 유대인 박해를 받아 가지고 있던 직장에서 퇴출되는 등의 고초를 겪었다.
이 시절 굵직한 인식 철학 사조는
칸트, 헤겔, 하이데거 등의 독일인 철학자들이었다.
그 시절의 독일 철학자의 대부분은 유대인 박해의 은밀한 공조자라고 한다.
실제로 하이데거는 나치당의 당원이기도 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장켈레비치는 독일어를 아예 쓰지도 않고,
독일 철학 사조 역시 받아들이지 않는다.
유대인들을 박해하고 그에 공조했던 철학 사상에 대한 결별은 말은 쉬워보이나
그 시절 인식론의 대부분이 독일 철학자들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자라났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가 주류로 분류되는 철학자가 아니라고 판단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총 삼 부의 짤막한 담화를 그려낸다.
죽음, 사형제도, 폭력으로의 저항, 안락사 등이 주제가 된다.
장켈레비치는 인간은 죽음을 알 수 없다고 말한다. (비존재)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서 죽음을 겪지만
죽음을 겪음으로 인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므로
그 영역을 아는 것은 불가해하다는 것이 입장이다.
그 불가해성으로부터 비롯되는 공포를 완화시키는 것이 종교, 장례 제도다.
그리고 인간은 죽음이라는 끝을 인지하고 있으나
그것이 자신에게 닥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인간은 죽음이라는 한계를 인지하고 있기에 다른 생물들과 다른 존재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인간이 죽음을 인식할 수 없다면 무엇이 남는가? 라는 말에
장켈레비치는 살았던 삶 (의미)가 남는다.. 라고 한다.
신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불가지론자라고 본인이 밝혔다.)
합리주의와 과학이 발달하며 신학이 이전보다 약해진 것은 사실이나
특히 2차 세계대전을 겪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에 대해 회의적으로 변한 것 같다.
죄 없는 어린아이까지 마구잡이로 죽이는 전쟁을 통해
신이 존재한다면, 그 교리대로라면 자행되지 않아야 할 일들을 보며 많은 걸 깨닫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 된다.
P. 모름..
저는 한 운명이 끝이 나고 닫히면 그 어둠 속에는 의미가 비어 있는 일종의 메시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만족스러운 답을 얻었다고 말할 수 없더라도 이해하려는 시도를 중단하게 되겠지요.
P.모름..
그리스도를 본받아 에서는 항상 <메멘토 모리>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스토아 학파만이 아니라 특히 그리스도교들도 죽음을 준비하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에는 내세가 존재하지요. 내세에서 삶을 살기 시작하는 것이므로, 죽음 이후에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내세가 존재하므로 인간은 죽음과 친근하게 지내게 되고 평온하게 죽게 되지요. 오늘날에는 그런 믿음이 약화되었지만요.
P.110
이론적으로는 저는 안락사에 찬성합니다. 하지만 모든 경우에 안락사에 찬성한다고 하는 것은 시간과 시간이 갖는 힘 그리고 미래의 시작, 가능성의 의미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기술의 발달과 병의 진행상태 그리고 환자가 자신의 병에 대해 갖는 감정의 변화를 고려해야 합니다. 아무리 신중하고 냉철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내린 모든 결정은 결정 당시의 상태와 관련된 그날의 순간적인 결정일 뿐입니다. 자살을 결정하는 사람들의 경우와 같이 예외적인 경우에 신중하게 내린 결정을 제외한다면 말입니다.
P.
모든 불평등 사이에서 거대한 평등을 이루게 되는 것이 죽음입니다.
P. 모름..
폭력에 대해 폭력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분명 모순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조건, 힘의 우열관계, 인간의 유한성 등을 고려할 때 우리는 무구할 수 없고 완전히 일관되고 투명하게 행동할 수도 없으며, 예컨데 악한 사람들 스스로 악하다는 점을 인정하게 할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폭력에 대항하는 폭력이 허용되는 것입니다.
P. 173
우리가 삶을 견딜 수 있는 까닭은 죽는다는 사실을 앏면서도 그 날짜를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