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20240816] 어니스트 베커 - 악에서 벗어나기

뱀꼬리 2024. 8. 16. 21:53

 

약 1년에 걸쳐 읽은 책

 

 

나치의 홀로코스트,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이 세상에 발생하는 많은 악들의 근원은 무엇일까?

삶의 불평등의 기원이 무엇일까?

 

사실 이 질문에는 수많은 사상가들이 대답했다. 누구는 사회 구조가 불평등을 만든다고 했으며

누군가는 개인의 차이가 만들어 낸다고 했다.

 

저자는 인간 본성으로 인해 이러한 죄들이 생겨났다고 말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본성은 누군가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사악하고도 악마적 주술에 걸린 미치광이들이 한 짓이 아닌, 국가를 위해, 영웅주의의 확장을 위해 진행하게 된 것이다.

 

필멸하는 생물임에도 영원히 살아가기를 원하는 죽음으로의 공포가 인간을 절대적인 것에 의존하게 만들며, 그것에 자신을 의탁하고자 하고, 그곳에 헌신하므로 자신을 그 권력과 동일시한다. 인간은 죽음을 이겨내기 위해 타인을 죽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설명하며 이를 통해 불평등과 세상의 악이 발생한다고 한다.

 

저자의 관점은.. 흥미롭고 공감이 가는 부분도 많다.

부자가 아님에도 왜 가난한 이들이 부자의 손을 들어주려 하는지.

폭군이라고 생각 된 사람이 왜 어느 사람에게는 미화되는지..

이미 쓰레기로 넘쳐나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지만 왜 사람들은 끊임없이 생산하는지..

 

저자는 계몽주의적 합리주의가 커다란 모순(이성이 잘 성립되면 인간이 똑바로 살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는 걸

인간 본성을 설명하며 말해준다.

본성을 설명할 땐 프로이트와 랑크를 계속 인용하는데 그 둘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어서 반의 반도 못 알아먹었다.. 차라리 마르크스 설명할 때가 편했음..)

 

인간의 무한성에 대한 갈망과 폭력성을 좋은 쪽으로 해소한다면 잘 해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 주장했으나..

내 입장은 회의적이다.. 해결책 없는 냉소주의라 저자는 싫어하겠지만 2024년의 현실이 그렇다.

 

북극의 빙하는 10년 내에 사라질것이라는 전망이고, 남획으로 인해 바다 물고기들도 몇십년 이내에 사라질 예정이다.

없어질 줄 알았던 전쟁은 이해관계자들에 의해 지속되고 인류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 고착화된다.

(한국 사람들은 그들이 한국에 태어난 것 만으로 세계의 손꼽히는 특권층으로 태어났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한 달에 몇 만원을 벌면서 세계로 수출할 작물을 재배할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망해가는 조별과제를 눈 앞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개인은 이 책을 읽으면서 저놈들이 왜 저러는지는 알겠군.. 이라는 공감만 할 뿐이다..

하지만.. 문제를 알면 해결책이 보인다.. 작가가 기술해 둔 이 본성을 잘.. 살리고 잘 써먹어서

노답 조별과제가 슬기롭게 해결되길 기도해 본다..

 

 

<마음에 들었던 구절>

 

 

p.157

경제적 평등을 현대의 민주적 인간이 견뎌낼 수 없다는 건 놀랍지 않다. ... 가시적 불멸성의 차원에서 당신의 충만함도 줄어들며, 그리하여 당신은 죽는다. ... 현대 상업주의의 이데올로기는 역사상 유례없이 부당한 비교를 일삼는 삶을 촉발했다. 다시 말해 현대인이 경제적 평등을 용인할 수 없는 까닭은, 그 자신이 자기 초월적인 저세상의 불멸성 상징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현대인에게 영원한 삶을 부여하는 유일한 대상은 그가 지닌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가치이다. 사람들이 그러한 소모적인 헌신을 통해 스스로를 구별지으며, 그 특별함을 얻으려 그토록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는 건 전혀 놀랍지 않다. 인간은 궁지에 몰렸을 때, 비참하도록 궁핍한 불멸성의 추종자일 때, 더 가혹하게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인간은 자신의 특별함을 나타내는 작은 상징이 사라질 때 죽는다.

 

p.208

우리 시대의 비극적 전쟁들이 가르쳐준 교훈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적이 제의적 역할을 수행하며 이를 통해 악이 구원받는다는 점이다.

 

p.209

인간은 자신이 선량한지 여부를 오직 권위자가 그렇다고 말해줄 때만 알 수 있다... 왜 인간의 선량함의 기준에 부응하기 위해 집단이 원하면 어떤 일이든 서슴없이 하는지 설명해준다. 인간의 영원한 삶은 그것에 의존한다.

 

p.242

선과 악은 너무도 분리 불가능하게 얽혀 있어서 구별할 수 없다. 악은 선을 낳고, 선한 동기는 악을 낳는 듯하다. 그 역설은 악에 대한 영웅적 승리를 추구하는 인간의 충동으로부터 악이 발원한다는 점이다. 인간을 가장 괴롭히는 악은 자신의 취약성이다. 인간은 자기 삶의 절대적 의미를, 우주 속에서 그 의미의 중요성을 보장하는 일에 무력해 보인다. 따라서 인간은 이 삶과 이 세계에서 자신의 우주적 영웅주의를 완수하려 노력함으로써, 악의 창궐을 보장한다.

 

p.265

따라서 우리는 유기체로서 인간이 스스로를 영속화해야하는 운명이며, 의식을 지닌 유기체로서 악을 그 영속화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해야 하는 운명임을 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스스로를 유기체로서 개별화하고, 자신의 특별한 재능과 성격을 발달시키도록 추동된다. 그렇다면 그 재능을 가장 잘 개발하고 사용하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당연히 악에 대항한 싸움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윌리엄 제임스가 보았듯, 인간은 이 지구를 영웅주의를 위한 무대로 간주하고, 자신의 삶을 바로 악을 초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영웅적 행위를 위한 수단으로 간주할 운명이다.

 

p.271

인간은 생존하고 정상적 정신 건강을 갖추기 위해 물신화해야만 하는 동물이다. 하지만 인간이 생존하게 해주는 이러한 전망의 축소는, 또한 동시에 인간이 자기 경험의 축소가 초래할 결과를 대비하고 통제하는 데 필요한 포괄적 이해를 갖추는 것을 방해한다.

 

p.298

과학이 구도에서 제외되지 않는 고차원적 수준에서, 과학과 비극의 통합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우리는 분명 이 지구상에서 우리가 지닌 조건으로는 위대한 일을 결코 성취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또 다시 비합리주의라는 저울에 견고한 무언가를 던져 평형을 깰 수 있다. 인간 운명에 영향을 끼치려 했던 사유의 실패에 관한 모든 것을 고려해볼 때, 우리는 이미 우리 시대의 위대한 일들을 목격했다. 마르크스주의는 이미 인간의 생존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것은 러시아에서 히틀러를 막아냈고, 지구상의 가장 많은 사람이 겪는 쓸데없고 오래된 불행을 제거했다. 프로이트 사유의 비극적이고 진정한 의미가 마침내 충분히 이해되었을 때, 우리가 그 사유에서 어떤 이득을 얻게 될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어쩌면 프로이트의 사유는 파괴를 상쇄할 바로 그 이성의 세부 척도를 우리에게 소개할 것이다.